한국국학진흥원, ‘공직의 덕목’ 주제로 ‘웹진 담談’ 3월호 발행

드라마 '어사와 조이' 장면.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드라마 '어사와 조이' 장면.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한국국학진흥원이 최근 공직의 덕목이라는 주제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3월호를 발행했습니다.

오는 9일은 제20대 대통령 선거일로, 새로 선출된 대통령은 모든 공직자의 수장으로서 선인들이 남긴 일기를 통해 조선 관리들의 청렴하고 올바른 모습과 더불어 부패하고 탐욕스러웠던 형태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올바른 국정운영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게 한국국학진흥원의 설명입니다.

권력자 맘대로 좌지우지 인사행정 그대로 놔둘 수 없지

이정철 박사의 받침돌 같은 바른 권력을 꿈꾸며는 고려 시대 무신정권기에 설립됐던 정방(政房)이라는 기구가 인사권을 사유화해 고려의 멸망에 이르게 했는지와 어떻게 조선의 건국이 인사 행정의 공공성 회복이라는 과제를 수행하게 됐는지를 이야기합니다.

1170년에 정중부(鄭仲夫, 1106~1179) 등 일군의 무장들이 정변을 일으켜 설립된 무신정권은 최고 권력자가 바뀌면서 100년간 이어졌습니다.

1225년에 당시 무신정권 최고 권력자 최우(崔瑀, ?~1249)는 자기 개인 집에 정방을 차리고 조정의 문관과 무관에 대한 인사행정을 마음대로 했습니다.

무신정권은 100년만인 1270년에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정방이 최종적으로 폐지된 것은 1388년입니다. ‘위화도 회군이 있었던 해이고, 4년 뒤 세워지는 조선 왕조의 건국 세력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해입니다.

정방은 실질적으로 고려가 패망할 즈음까지 존속했습니다. 누가 권력을 쥐든 권력의 핵심인 인사권을 사유화하고자 하는 유혹이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입니다.

조선 왕조 건국은 사유화 됐던 권력을 공적인 것으로 되돌려 놓는 과정이었습니다.

조선 왕조의 인사행정을 도목정사(都目政事)라고 했습니다.

중종 때에는 도목정사하는 자리에 사관(史官)이 참석했습니다. 인사에 관한 참석자들의 논의를 모두 기록하기 위한 것으로타협이나 담합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도목정사에서 관리들을 평가하는 주요한 기준은 조정이 수령에게 부여한 7가지 임무인 수령7였습니다.

농상성(農桑盛, 농업과 양잠에 힘씀), 호구증(戶口增, 호구를 증가시킴), 학교흥(學校興, 학교를 일으킴), 군정수(軍政修, 군정을 정비함), 부역균(賦役均, 부역 부과를 균등하게 함), 사송간(詞訟簡, 사송을 신속하고 분명하게 처결함), 간활식(奸猾息, 교활하고 간사한 버릇을 그치게 함)이 그것입니다.

그중 학교흥은 향교 설치에서 시작합니다. 조선 초에는 양반뿐 아니라 양인들도 향교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수령들은 향교 설립, 향교 건물의 수리, 향교 학생의 모집과 교육 내용 등을 점검하고 조정에 보고해야 했습니다.

조선 왕조는 백성들을 억압적인 지배 대상으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조정에서는 오히려 백성들을 법과 무력으로 다뤄야 할 통치 대상 이전에 공적 원리에 근거한 설득의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사송간과 간활식은 사회 현실에 두루 퍼져있는 불평등을 조선 조정이 알고 있었고 이를 공정하게 처리하려는 의지가 보이는 부분입니다.

조선 시대 소송에는 사송(詞訟)과 옥송(獄訟)이 있었고, 사송은 민사사건, 옥송은 형사사건에 가깝습니다.

'간활식'은 지역마다 뿌리박은 토호 세력에 대한 억제를 뜻합니다.

힘 있는 토호 가문과 힘없는 양인이 소송이 벌어지면 토호 가문이 승리할 가능성이 크므로 이 문제를 처리하는 원칙을 담은 것입니다.

이것들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기울어진 정도가 더욱 심해져서 현실이 파국에 이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정상적인 권력은 마치 경사진 길에 주차된 차 뒷바퀴를 받치고 있는 받침돌과 같습니다.

바른 권력의 목적은 공동체를 지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것을 사유화하면 가장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역설 또한 성립한다는 점입니다.

총체적 난국을 올바르게 이끈 공무원 이 시대에도 필요하다

하원준 감독의 토호 세력에 맞선 조선 공무원 류작(柳綽)’에서 지역 발전을 방해하는 토호(土豪) 세력과 맞섰던 류작(柳綽)에 관한 이야기를 펼칩니다.

토호들은 지역의 서원 등을 중심으로 중앙에서 파견한 관리와 대립하고 지역의 생산물에 대한 국가의 수취를 방해하고 이익을 독점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파견된 관리를 매수해 견고한 결탁 세력으로 만들기까지 했습니다.

류작은 1686(숙종 12)에 태어난 문신으로서 토호들에 의해 온갖 폐단이 집중돼 부사들이 매번 토호들에게 패배 당했던 경상도 영해(寧海)에 부임했습니다.

그는 세금을 공평하고 정확하게 징수했고, 토호 세력과의 결탁을 일삼는 서리와 아전의 허위 문서를 엄하게 문제 삼고 이를 바탕으로 환곡을 했습니다.

조선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해 특별히 관리되는 국유림을 봉산(封山)이라 하는데 이는 선박을 만들 수 있는 군사 요충지에 설정한 산림과 진상을 위한 임산물을 채취하는 곳에 지정됩니다.

이러한 봉산에서 이뤄졌던 토호들의 벌채(伐採)를 금지하는 강력한 조치를 했습니다.

이탈하거나 누락된 군인들까지 신상 명세 기록을 엄밀하게 관리해 군사들의 기강을 세워줘 군인들의 신임을 얻은 류작에게 토호들이 범접하지 못했습니다.

류작의 사후 10년 뒤 태어난 목민심서를 집필한 정약용보다도 일찍이 목민을 실천한 선구자인 그가 우리 시대에도 필요한 올바른 공무원이지 않을까 합니다.

간이 행한 모든 걸음에 남는 발자국 실수 하나도 용납해서는 안된다

서은경 작가의 스토리웹툰 - 순백의 눈송이여에서는 별군직(別軍職) 구순(具純)과 병마절도사 조학신(曺學臣)이 곤장을 맞았다는 소식이 담긴 조보(朝報)를 읽은 노상추가 남긴 일기를 웹툰으로 소개합니다.

구순이란 자는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윤빈과 관련된 소식을 듣고 거짓으로 그를 모함에 빠트립니다.

남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무고죄를 범한 구순은 물론 자신의 휘하 군관인 구순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병마절도사까지 곤장을 때려 유배를 보내 엄하게 다스렸다는 조보 속 뉴스였습니다.

이를 읽은 노상추는 인간이 행한 모든 걸음에는 발자국이 남으니 실수로라도 무고죄로 후세에 기억되지 않겠다는 다짐을 남겼습니다.

스토리웹툰 '순백의 눈송이여'(만화 서은경).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스토리웹툰 '순백의 눈송이여'(만화 서은경).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눈물 흘리는 이들을 진정으로 대변할 수 있는 겸손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시나리오 작가 홍윤정은 미디어로 본 역사 이야기-Attitude is Everything’에서 후보와 후보 가족의 사과가 유독 잦은 20대 대통령 선거를 맞이해 지도자에 관한 미디어 속 이야기를 펼칩니다.

도학 정치를 이상으로 삼은 조선이지만 드라마 대박(2016)’에서 백성은 하늘이라 말하면서도, 정작 연잉군이 모두를 대신해 백성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자 백성들의 분노는 사그라들었으나, 숙종과 세자는 천지가 뒤집힌 듯 들고 일어나 무릎을 꿇은 것에 화를 내었습니다.

끊이지 않는 악습, 탐관오리의 만행을 담은 드라마 어사와 조이(2021)’ 1화에서 충청 지방으로 간 암행어사의 사체가 바닷가로 떠밀려오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어사는 세곡 창고를 급습해 수령과 중앙 관료의 비리를 알아내고, 세곡선을 타고 한양으로 오던 중 수령의 수하들이 일부러 세곡선을 침몰시키는 바람에 죽음을 맞게 된 것입니다.

작가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공직자의 모델로서 잠곡(潛谷) 김육(金堉, 1580~1658)을 소개합니다.

영화 광해(2012)’에서는 광해군 혼자 오롯이 대동법을 주장했다고 하기 쉽게 묘사됐지만 사실 김육이야말로 대동법을 위해 평생을 바친 사람이었습니다.

인조반정 이후 조정의 부름을 받고 나아간 그는 자신이 몸소 체험해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백성들을 위해 대동법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또한 사신으로 명나라에 오가면서 화폐경제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일을 추진하면서 직접 돈을 만지고 유통하는 것은 저잣거리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백성들이지 사대부가 아니다라며 저잣거리 백성들과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그의 이런 노력은 이후 상평통보 발행으로 이어졌습니다.

작가는 이 사회의 곳곳에서 눈물 흘리는 이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대변할 수 있는 겸손한 태도를 가진 지도자가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에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밝혔습니다.

이문영 작가는 정생의 어사일기에서 정월 설날에 쉴 수 없었던 머슴들이 쉬는 날 머슴 설날에 놀고 싶어 하는 학동과 주고받는 내용이 재미있는 풍속화 느낌의 소설 작품으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21일 머슴 설날에 학동들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놀 궁리를 하자 정생은 오늘이 중화절인 것을 모르냐며 호통을 칩니다.

정생은 학동들에게 선대왕(정조)께서 자신의 백부에게 내려준 중화척을 보여주며 중화절의 중화(中和)’중용에 나오는 말로 만물이 중화에서 자라난다는 말이며, 자는 길이를 정확히 재기 위해 사용하니, 매사 정확하고 어긋나지 않게 하라는 뜻으로 신하들에게 하사하는 것이라고 일렀습니다.

중화척에 담긴 정생의 사연은 더 있었습니다.

스무 살 때 과거를 보러 가던 길에 백부댁에서 부적 삼아 내어준 중화척을 들고 한양으로 바삐 걸음을 옮기다가 밤중에 길을 잃게 됐습니다.

집을 발견하고는 기뻐서 나무와 덤불을 헤쳐 가느라 옷이 다 헤어져 비렁뱅이 선비 꼴이 돼 도착한 곳은 기생집이었습니다.

사또가 아닌 것을 알고 야박하게 쫓아냈지만 절박했던 정생은 요기할 수 있도록 사정을 했고 끼니를 때울 수 있었습니다.

배가 부르자 산속에 있는 기생집이며, 환곡 문제에 대해서 들은 이야기가 있어 현감이 괘씸해졌습니다.

정생이 관리숙창률(官吏宿娼律, 수령이 자기 관할의 기생과 동침할 수 없다는 규정) 위반과 환곡에 대해서 따져 묻자, 기생은 암행어사가 아닌가 의심을 했고, 정생은 그 앞에 마치 어사에게 주는 유척처럼 중화척을 꺼내놓으며 으름장을 놓습니다.

기생은 결국 사또에게 포흠곡(가뭄 때 구제를 위해 내주는 진휼곡을 갚지 못했을 때 유예시켜준 환곡)을 징수치 말라고 말하겠다고 약조합니다.

백면서생 주제에 관직을 사칭하는 죽을 죄를 지었으나 모두 이 자 덕분에 많은 백성의 목숨을 건졌으니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정생이었습니다.

나무판에 새긴 이름, 편액에서는 공직자의 출처진퇴(出處進退)를 보여 준 류승현(柳升鉉)의 용와(慵窩) 편액을 소개합니다.

류승현은 관직에 있으면서 공정하고 사사로움이 없이 공평함으로 정무에 임해 당대 사람들로부터 공평한 사람이라는 평을 들었습니다.

류승현은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 영남 지역까지 반란군의 세력이 뻗쳐 올 때 안동부에서 제일 먼저 의병을 일으켰고, 피폐해진 고을과 병들고 지쳐있는 백성들을 구제하고 부패한 관리를 처벌하며 공정을 바로 세웠습니다.

고향인 박실[瓢谷]에 집을 짓고 용와라고 이름 지은 것은 은퇴 이후 게으른 본성을 기르며 학문의 정진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이번 호 웹진 편집장을 맡은 공병훈 교수는 끝없이 충돌하며 비판하고 토론하는 과정인 민주주의 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분이라고 언급하며 이번 대통령 선거가 우리 사회와 모든 구성원의 의견과 마음을 모아 소통하며, 낮고 그늘진 곳의 존재들까지도 행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는 소감을 밝혔습니다.

한편, 한국국학진흥원이 2011년부터 운영하는 스토리테마파크(http://story.ugyonet)에는 기록 자료를 문화예술 기획·창작자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조선시대 일기류 250권을 기반으로 한 6710건의 창작 소재가 구축돼 있고, 검색 서비스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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