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향 광주의 뿌리, 광주학생독립운동을 기념하며" 

박주정 교육장(광주서부교육지원청)
박주정 교육장(광주서부교육지원청)

■ 프로그램 : 광주BBS '빛고을 아침저널'-교육칼럼
■ 주파수 : FM98.7MHz, 전남 동부권 105.7MHz, 여수 105.1MHz.
■ 방송일 : 2021년 1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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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92주년 광주학생독립운동을 기념하여 ‘의향 광주의 뿌리’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기억하십니까?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제국주의 침략의 그림자가 몰려왔던 그 시기를. 무기력한 조선 왕실과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오적이 5천 년의 역사를 무너뜨렸고, 경복궁에 일장기가 걸렸습니다. 조선총독부는 총칼로써 우리 민족을 짓눌렀습니다. 학교에서 교사는 칼을 차고 아이들을 통제하여 우리나라 역사를 가르칠 수 없었으며, 우리의 고유한 역사는 왜곡되어 갔습니다.
 
  일제 강점기 대한독립을 위한 3대 만세운동이 있었습니다. 1919년의 3·1운동, 1926년의 6·10만세운동, 그리고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입니다. 우리의 주권 회복을 위해 독립 만세를 외치다가 3·1운동 때는 7,000여 명 사망, 15,000여 명 부상, 45,000여 명이 체포되었고, 6·10만세운동 때는 1,000여 명이 체포되었습니다.

  1929년 11월 3일 광주와 나주 통학열차 안에서 조선학생과 일본학생이 충돌하는 사건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발단이 됩니다. 일본학생이 조선 여학생의 댕기머리를 잡아당기며 희롱합니다. 이를 지켜보던 박준채 학생은 “나는 피가 머리로 역류하는 분노를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광주역에서 조선학생들과 일본학생들이 충돌하였고 이를 지켜보던 어른들도 합류하였습니다.

기마경찰대는 잔인하게 우리 학생들을 진압하지만 광주고보 학생들을 비롯해 순식간에 3만여 명이 독립운동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러자 무자비한 일본은 광주 전역에 휴교령을 내렸고, 광주학생들은 서너 명만 모여도 체포되었습니다.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전국적으로 194개교가 동참하였고, 54,000여 명이 일본에 저항했으며, 170명이 실형, 934명이 퇴학, 2,330명이 무기정학을 당합니다. 이렇게 광주학생독립운동은 계속해서 학생들의 심장에서 부활하였습니다. 

  불의를 용납하지 않았던 우리 학생들의 저항을 우리가 기억하지 않는다면 누가 기억하고 계승하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광주 시민이 광주학생들과 함께 학생독립운동을 기억해야 할 이유입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정신은 이후 학생들의 마음속에 되살아나 5·18 민주화 운동, 촛불혁명까지 이어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광주학생독립운동은 대한독립과 정의를 위해 싸워온 학생들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는 날이자 자유, 평등, 인권, 정의를 사랑하는 학생들을 위한 날입니다.

  우리 교육청에서는 식민잔재를 청산하고, 광주학생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학생독립운동 역사 아카데미, 학교역사 찾기, 역사동아리 운영, 전국 교원초청 광주정신 탐방 직무연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자주독립과 민주의 의미를 되새기고, 우리 학생들이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하도록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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