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 >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전남지부장으로 계엄군에 맞서 항거하다 숨진 지광 김동수 열사의 41주년 추모 문화제가 엄수됐습니다.
참석자들은 민주주의를 향한 뜨거운 열망으로 독재에 항거한 열사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진정한 보살행을 기렸습니다.
광주BBS 진재훈 기잡니다.
< 리포터 >
[현장음]"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지고 구슬픈 가락에 맞춰 망자의 원혼을 달래는 진혼무가 펼쳐집니다.
가슴에 묻은 아들에게 한 송이 국화꽃을 바치는 어머니는 끓어오르는 슬픔을 애써 억누릅니다.
광주의 수많은 젊은이들과 시민들이 폭도라는 오명을 쓰고 전두환 신군부의 총칼과 군화발에 무참히 짓밟힌 80년 5월.
김동수 열사는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의 전남도청 최후 진압작전에 앞서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도 항쟁의 현장을 외롭게 지켰습니다.
[인서트] 민형돈 / 조선대학교 총장
(“선량한 시민을 학살하는 계엄군에 맞서기 위해 항쟁본부에 들어가 온몸을 바친 바로 그 김동수 정신을 이어가는 것은 살아있는 우리들의 몫입니다.”)
김 열사는 비상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되자 목포로 잠시 피신했다가 계엄군의 시민 학살 소식을 듣고 광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친구는 김 열사를 만류하지 못한 후회스러움이 아직까지 마음의 빚으로 남아있습니다.
[인서트]이남 / 김동수 열사 친구(김동수 기념사업회 회장)
(“두고 두고 후회스럽고 정말 이제 생각해보면 (열사를 광주로) 가지 못하게 잡았어야 할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쉽고 가더라도 같이 같어야 할텐데 하는 그런 애통한 마음으로 41년 동안 지냈습니다.”)
보살행을 실천하며 스물 셋의 짧은 생을 마감한 지광 김동수 열사.
이상호 민족화가의 보살도를 통해 41년 만에 다시 우리 앞에 화현했습니다.
BBS뉴스 진재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