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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적한 법정스님의 맏상좌이자 사단법인 '맑고향기롭게' 이사장 덕조스님이 BBS라디오 뉴스파노라마에 출연해 배재수 앵커와 인터뷰하고 있다.
입적한 법정스님의 맏상좌이자 사단법인 '맑고향기롭게' 이사장 덕조스님이 BBS라디오 뉴스파노라마에 출연해 배재수 앵커와 인터뷰하고 있다.

 

■ 앵커: 배재수 사회부장
■ 출연: 덕조스님/ 전남 순천 불일암 암주.(사)맑고향기롭게 이사장
■ 프로그램: BBS뉴스파노라마 [부처님오신날 특집] 법정스님 발자취와 가르침, 육필원고 첫 출간 

 

[배재수 앵커]
불기 2565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묵묵히 올곧은 수행자의 길을 걷고 계신 산중 스님 한 분 만나뵐까 합니다. 앞서 예고해 드린 대로 법정스님의 맏상좌 덕조스님이신데요, 아시겠지만 법정스님은 생전 무소유의 가르침과 촌철살인의 글로 많은 이들에게 깨우침을 주셨던 분이죠, 그런 스님을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보필하시면서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으셨던 스님이 바로 덕조스님이십니다. 현재는 법정스님의 법향이 스며있는 전남 순천 송광사 산내암자죠, 불일암에서 13년째 정진 중이십니다. 지난해부터는 시민단체 ‘맑고 향기롭게’의 이사장으로도 활동하고 계시는데요, 덕조스님 만나뵙겠습니다. 직접 스튜디오까지 먼 걸음 해주셨습니다. 덕조 스님, 어서 오십시오.

[덕조스님] 
네 반갑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마음의 등불을 밝히시고 모두 행복하신 하루되시기 바랍니다.

[배재수 앵커] 
네 고맙습니다. 코로나19 상황이고 지방에 계셔서 직접 뵙지 못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시절 인연이 됐습니다. 먼저, 뉴스파노라마 청취자분들에게 간단하게 인사 한 번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덕조스님] 
지금 코로나 상황이라서, 모두 다 힘들어하십니다. 우리가 겪는 일들은 영원한 게 하나도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고통을 안고 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그 고통을 쉽게 벗어날 수 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부처님이라는 분은 ‘깨달은 이’라고 하는 말뜻이 있듯이 우리들 자신이 부처님 제자,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사신다면 이 어려운 코로나 정국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배재수 앵커] 
오늘 불기2565년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라는 특별한 상황 속에서  예년처럼 들뜬 분위기는 없는데요, 올해 부처님 오신 날의 의미, 앞서 좀 말씀해 주시기는 하셨지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덕조스님] 
현재 우리에게 주어지는 상황들을 어렵다 어렵다 해서 그것이 해결되는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렵다는 것은 마음보다도 경제적인 상황들이 어렵다고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우리만 힘든 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어려운 코로나 상황인 것이고 이것은 모두가 겪는 이들이기 때문에 지혜로운 생각으로 한다면 경제적으로 수익과 지출을 예전같이 하지 마시고 조율하는 지혜 그런 것들이 있다면 좀 더 이 어려운 시국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배재수 앵커] 
네, 스님께서 머물고 계신 곳이 순천 송광사 산내 암자인 불일암인데요. 그곳에 부처님 오신 날 분위기 또 어떻습니까?

[덕조스님] 
아무래도 부처님 오신 날, 옛날 분위기하고 전혀 다르죠. 예전 같으면 많은 분들이 찾아오시고 그랬는데, 지금 상황은 그런 상황이 아니고 또 비대면이다 보니까 서로가 조심하고 있는 상황이고요, 예전 같으면 부처님 오신 날 불일암에 찾으신 분들을 제가 하루 종일 바깥에 앉아서 다과를 베풀고 차를 대접했는데, 지금은 비대면이라서 차도 대접 못해드리고 다과도 못 해드리고 그런 상황입니다. 

[배재수 앵커]
은사 스님이신 법정스님께서 입적하신 지가 올해로 11주기입니다. 올해 어떻게 어른스님 추모하셨습니까?

[덕조스님] 
지금은 모든 행사를 못하는 그런 여건 상황인데요. 그래서 은사스님 12주기 추모 법회도 많은 분들께 오시라고 초청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각각 스님하고 인연있는 불자님들이나 또 스님들께서 오셨어요. 그래서 스님을 추모하기 위해서 스님 영상 본문을 듣고 향을 사르면서 간소하게 12주기 추모 법회를 하였습니다.

[배재수 앵커] 
법정스님께서 입적하시면서 스님께는 특별히 당부하셨던 말씀이 있으셨잖습니까? 어떻게 받아들이셨고, 또 13년째 지금 불일암에서 수행 정진하고 계신데요, 어떻게 실천하고 계시는지 말씀해 주시면? 

[덕조스님] 
스님께서 저한테 이제, 10년 동안 살라는 유훈을 내려 주셨는데요. 돌이켜 보면 제가 불일암에서 지금 13년, 제가 출가해서 젊은 시기에 길상사에서 12년 동안 살았거든요.

[배재수 앵커] 
주지 소임을 맡으셨지요?

[덕조스님] 
네, 창건부터 불사하고 도량 가꾸는 12년 동안 살았는데, 12년 살은 보상으로 저는 스님께서 저한테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불일암에서 스님의 그런 향기, 몸소 느끼고 그곳에 오신 분들을 이제 많으시거든요. 1년 365일 하루도 참배객이 없는 날이 없습니다. 그분들은 저를 만나러 오는 게 아니라 은사스님이 사셨던 불일암의 그 향기나 산사의 그것을 느끼러 오시기 때문에 저는 그분들을 마치 은사스님 찾아오는 귀한 손님 대접하듯이 맞이하고 있고요, 저의 생활이라는 것이 수행이라고 별 게 있는 게 아니고 그야말로 제 때 일어나서 염불하고, 제 때 공양하고, 제 때 정진하고, 제때 마당 쓸고, 울력하고, 제 시간에 모든 것을 한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배재수 앵커] 
일상을 수행생활로 여기시고.

[덕조스님] 
그렇죠. 또 많은 분들이 찾아오시는데 그분들이 은사스님 살아계실 때도 그랬습니다. 나를 귀찮게 하고 하는 분들이 사실 다양한 사람들이 오시거든요. 나를 괴롭히면 너 수행 얼마 만큼 됐는 지 테스트하러 왔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셨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셔가지고 저한테 그야말로 안 좋은 시비를 걸어도, 아 이 분이 나한테 시비가 아니라 내 수행을 테스트하러 왔구나 하는 그런 마음으로 접하고요. 그래서 이제 불일암에서 사는 삶이, 마당 쓸고 청소하고 정진하고 그것이 즐겁습니다.

[배재수 앵커] 
법정스님의 대표적인 사상 하면 무소유, 그리고 생명존중 사상, 이렇게 말들 하지 않습니까. 스님께서 지근거리에서 보필하시면서 법정스님의 사상, 뭐라고 느끼셨습니까?

[덕조스님] 
참,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에요. 세상 사람들이 다 스님을 말씀하면 무소유 부르는데요, 스님의 사상이라기보다도 스님의 삶을 보면 당신 자기 자신한테는 굉장히 엄격하셨고 그리고 이웃들한테는 굉장히 자비스러운 모습을 보이셨거든요. 이를테면 그 많은 책을 독자들이 구입하고 인사를 드리러오면 당신을 위해서 사용하시는 게 거의 없으신 거거든요. 그렇다면 자비의 실천을 보이지 않게끔 실천을 몸소 하신 분이죠. 무소유 삶을 말로 아니라 그냥 몸소 실천하신 분, 그리고 생존 존중 사상 뭐 이런 것들은 자연 훼손하지 말라는 것부터 당신 손수 환경 파괴하지 않겠다는 그런 설법, 법문 이런 것이 당신의 삶이 전부가 아닌가 싶습니다.

[배재수 앵커] 
말이 아니라. 몸소 실천하셨던.

[덕조스님] 
네, 스님께서는 말보다 실천이 먼저였거든요.

[배재수 앵커] 
스님께서는 법정스님의 책을 인연으로 해서 출가하셨다고 제가 들었는데요, 오랫동안 스님 가까이 계시면서 스님과의 어떤 기억에 남는 인연, 즐거운 인연, 어떤 게 있으시면 좀 들려주시죠?

[덕조스님] 
이번에 맑고향기롭게 책을 내면서 여러 가지 자료를 뒤지다 보니까, 스님께 제가 처음으로,  제일 처음으로 사인을 받은 게 있더라고요. 여기 ‘불일시자 이행자님 수지’. 행자 때 처음으로 스님 시봉을 하면서 받은 사인입니다. 제가 스님을 행자 때부터 시봉했는데요, 스님을 가까이 하면서 제가 시봉하면서 꾸중을 들었던 것은 시간을 잘 안 지켰을 때, 물론 뭐 제가 어기고 싶어서 어긴 건 아닌데요. 시간 관련이 철저하셨다는. 

[배재수 앵커] 
스님도 좀 철저하시잖아요.

[덕조스님] 
스님을 모시다 보니까. 그게 제가 스님의 모습에서 제가 그걸 좀 닮지 않았나 싶은데요. 그런데 스님 만큼은 아닌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어디 출타하실 때 예전에는 교통편이 불편해서 택시를 타고 가시려하면 택시를 몇 시 몇 분까지 대라 그러면 스님은 정확하게 그 시간에 내려오시지만 택시 기사분들은 정확하게 차를 대지 않거든요. 그러면 불호령은 택시기사한테 떨어지는 게 아니라 저한테 떨어져요. 그런데 그런 부분들. 그리고 당신의 삶에 있어서는 방문객이 와서 스님하고 이렇게 차담하다가도 예불시간 되면 벌떡 일어나셔서 예불하러 가셔요. 시간관념은 철저히 하신 분이에요. 그래서 그런 부분에 있어서 저한테도 굉장히 엄격한 잣대로서 저한테 훈육을 시키셨거든요. 그래서 더러 혼나고 많이 했죠. 

[배재수 앵커] 
시간을 철저하게 지키셨던 분이셨군요.

[덕조스님]  
네 

[배재수 앵커] 
지난해 4월에 법정스님께서 생전에 이끄셨던 시민모임이죠, ‘맑고 향기롭게’ 5대 이사장이 되셨습니다. 그동안 자리를 마다하셨던 걸로 제가 알고 있는데, 이사장직을 수락하시게 되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덕조스님] 
스님의 유지를 보면 10년 동안 불일암에 살아라 돼 있었고요, 지금은 13년 지났는데, 사실 스님께서 10년이라는 개념은 평소에 말씀이 뭘 하려면, 10년을 해야 된다는 스님의 그런 사상을 갖고 계시거든요. 10년 동안 뭘 하지 않고 뭘 했다 소리 하지 마라.

[배재수 앵커] 
저희가 우스개로, 뭐 서당개 10년 이면.

[덕조스님] 
네, 그렇듯이. 은사스님은 뭘 하려면 10년, 그냥 단순하게 10년 이렇게 말씀하셔요. 저한테도 유언에 10년이라는 유언이 있었고, 또 외부로부터 항상 저한테 질문받는 것이 10년 끝났으니까 뭐 하실 겁니까, 이런 질문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10년이 지나고 물론 그전에 뭘 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고, 또 10년이 지나서 제가 할 일이 뭔가 고민하다가 사단법인 맑고향기롭게는 스님의 정신이 오롯하게 담겨진 법인체인데 스님의 ‘유촉’을 받들어서 스님의 사상을 어떻게 펼칠 것인가. 그것은 누구의 몫인가. 고민하다가 제가, 맏이인 제가 힘들지만은 스님의 뜻을 받들어서 세상에 맑고향기롭게 정신인 마음을 맑고 향기롭게, 세상을 맑고 향기롭게, 자연을 맑고 향기롭게를 실천하는 데 제가 일조를 해야겠다. 그런 마음에서 마음을 냈습니다. 

[배재수 앵커] 
맑고 향기롭게 이사장이 되시고 나서 스님의 육필원고를 또 회보에 이제 실으시고 그러셨더라고요, 오늘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서 맑고향기롭게가 그간의 법정스님의 미발표 육필 원고를 한데 묶어서 책으로 출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책으로 만들어지게 됐습니까?

[덕조스님] 
맑고향기롭게가 올해가 27년 됐습니다. 스님께서 가신지 벌써 11주기가 지났고요, 맑고향기롭게가 사단법인체인데 스님 열반 이후에 알게 모르게 약간 침체된 분위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맑고향기롭게 소식지를 통해서 스님의 글이 나가고, 길상사 소식이 나가는데 제가 이제 스님의 유품을 이렇게 정리하다 보니까 미발표된 원고들도 있고, 이번에 제가 발견한 수련 교재 육필원고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올해부터 미발표 원고를 스님이 계셨으면 책으로 묶어서 나왔겠지만, 세상에 알리는 일을 첫 번째 맑고향기롭게 회원들한테 먼저 알리자. 그래서 몇 편씩 맑고향기롭게 소식지에 싣고 있습니다. 그리고.

[배재수 앵커] 
오늘도 이제 좀 가져오시기는 하셨는데. 그 육필원고가 불일암에 많이 있습니까? 

덕조스님이 처음으로 공개한 입적한 법정스님의 첫 육필원고.
덕조스님이 처음으로 공개한 입적한 법정스님의 첫 육필원고.

[덕조스님] 
많이는 아니고, 귀하게 제가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수련 교재는, 스님께서 1980년도부터 1991년도까지 11년 동안 수련원장을 맡으시고 교재를 만드셨는데, 이게 교재를 보면 35년 전에 원고를 쓰신 거거든요. 

[배재수 앵커] 
35년 전이요?

[덕조스님] 
35년 전의 원고를 제가 오늘 갖고 왔습니다. 이 원고로 보면 그야말로 당신이 불교를 어떻게 생각하고 책을 묶었는지 오롯이 드러납니다. 그런데 스님의 글을 보면 여태까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에세이집 수필집이고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종류는 스님의 경전 번역서거든요. 

[배재수 앵커] 
맞습니다. 

[덕조스님]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당신께서 불교가 어떻다고 정의를 내려서 책을 묶고 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이 원고를 가지고 제가 고민하고 어른스님들 보여드렸더니 “야 이거 보물이다” “박물관에 보관해야겠다” 이 말씀부터 먼저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반면에 스님의 글 속에 보면 당신이 그 해인사 시절에 법보사찰이니까 8만 대장경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어떤 분한테 “8만 대장경 잘 보셨습니까” 그랬더니. 그분 하는 말이 “빨래판이요?” 이렇게 말씀하셨단 말이에요. 그래서 스님께서 굉장히 거기서 충격을 받았다. 이 우리는 법보처럼 모시고 있는데 저분은 한낱 빨래판에 불과하구나. 그래서 스님께서 그것은 경전의 번역이나 쉽게 모든 사람이 알아볼 수 있게 번역을 해야겠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몰라보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래서 이 원고도 제가 박물관에 보관해버리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런데 스님께서 또 제일 듣기 싫어했던 단어가 작가라는 단어입니다. 스님은 수행자로 불리시길 바랬지. 수필가, 작가라고 불려지는거 제일 거부 반응을 일으키셨고 듣기 싫어하셨어요. 그런데 이렇게 스님께서 불교를 정리한 걸 보니까 수련생들한테 어떻게 불교를 알려주고 싶었을까. 그 마음이 다 읽혀지는 거예요 제가. 내용을 보면 또 초기 불교와 대승불교, 선불교, 선 수행까지 다 담겨 있거든요. 그런데 이것을 박물관에 넣어버리고 출판하지 않는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소중한 자료를. 이제 모든 사람들이 또 절판 얘기를 참 많이 하시거든요.

[배재수 앵커] 
네, 저도 그걸 여쭤보려고 했었는데.

[덕조스님] 
굉장히 부담스러워요. 그 말씀을 질문할 때마다. 스님께서 절판하라는데 또 책을 만들어?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셔요. 그런데 그런 분들이 양론이거든요. 종단의 어른스님들은 한결같이 복간을 해야 된다고 저한테 많이 꾸지람을 하셔요. 그 좋은 자료를 왜 사장시키느냐 그리고 너희 스님 없으니까 되지 않는 책들이 너무 많이 나오지 않느냐.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 스님만한 분이 어디 계시느냐? 그러니까 세상에 홍법을 하는 것은 너희 스님 책이 나와야 된다. 그리고 하시는 얘기가 10년이면 됐다. 그 정도 참았으면 됐지. 다시 복간해서 세상 사람들이 스님 글을 읽게끔 만들어야 된다. 너를 위해 아니라 불교를 위해서 그렇게 해야 된다. 이런 얘기를 참 많이 하셔요. 하지만 저는 스님의 유언을 듣고 있는 제자로서, 직계 제자로서, 맏상좌로서 어깨가 무겁고 함부로 실행을 못하고 있는데요. 다른 책들은 많이 나왔지만, 이 책은 우리 스님이 불교를 어떻게 정의 내렸는가. 나는 세상에 진짜 이것을 우리 스님이 불교를 바라본 시각, 정리, 굉장히 중요하다 생각해서 어른스님께 여쭤보고 그랬더니. “아 그건 박물관 들어가면 안 되지. 책을 내서 많은 사람들이 읽게 해야지” 그런 말씀에 용기를 얻어서 지금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배재수 앵커] 
사실 아직도 불자님들, 법정스님 많이 기억하시고요, 또는 책도 많이 구입해서 보고 계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입적하시기 전에 절판하시겠다고 유언을 하시면서 많이 아쉬워했거든요. 감로수 같은 글, 계속 봤으면 했었는데, 뭐 그럼에도 이제 스님께서는 좀 부담이 되시는 거죠?

[덕조스님] 
네 

[배재수 앵커] 
책 이름이 ‘진리와 자유의 길’이라는 책입니다. 책 제목에 담긴 의미, 어떤 내용일까?

[덕조스님] 
그러니까 수련교재인데, 우리들이 출가해서 수행한다면 진리를 찾는 것이고 자유로운 것은 해탈이지 않습니까. 스님께서 용어 선택에 있어서 보면 ‘열반’이다 ‘대오’다 이런 어려운 단어를 쓰지 않으셨거든요. 지혜는 진리고, 진리는 지혜고 그리고 자유란 것은 해탈이고, 해탈이 열반이다. 당신도 이제 자유를 추구, 열반을 추구하신 분이시고 또 불교를 공부한다는 궁극적 목표는 우리들의 자유가 대자유를 얻기 위한 것이고, 대자유는 대해탈을 얻기 위한 것이지 용어에 있어서 어려운 단어가 아니라 우리가 빨리 근접할 수 있는 용어 선택을 하셨고요. 그래서 이제 진리의 자유라는 것은, 에세이집은 참 가벼운 이름의 제목을 달았지만, 이 내용 자체가 진리이자 우리가 어떻게 한번 깨달음으로 갈 수 있는지 요체를 담았기 때문에 ‘진리와 자유의 길’이라는 제목을 달게 되었습니다. 

[배재수 앵커] 
그동안에 사실 발간된 책들 이름을 보면 수필집이나 산문집이나 뭐 경전 관련된 원고들, 그 책들을 보면 제목들이 다 자유롭고, 누구나 이제 쉽게 귀에 속속 들어오는 제목이긴 한데 이번은 좀 다른 성격의 글이고 하다 보니까 이런 제목이?

[덕조스님] 
네, 스님의 그런, 언제 제가 책 펴기 전에 다른 도반스님이나 어른스님들 보여드렸더니. 이야 이런 게 있었어. 다 놀래요. 그런데 물론 요즘에는, 참 80년대는 교리책이나 불교책이 많이 없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요즘에는 참 책이 쉽게 풀이되어서 많이 나와 있거든요. 그 당시에는 굉장히 귀한 책이었는데 우리 스님이 불교를 어떻게 해석했을까. 그러니까 이건 은사스님께서 강의를 위해서 어찌 보면 초안이라 해도 다를 바 없는 엑기스만 담아놨거든요. 그러니까 스님들 보니까. 야 우리 강의하기 참 좋겠다. 군더더기 하나도 없으니까.

[배재수 앵커] 
오늘, 부처님 오신 날이니까, 이제 오늘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겠죠. 빨리 가서 사 봐야겠습니다. 법정스님께서 워낙 큰 스님이시다 보니까 때로 맏상좌라는 수식어가 많이 부담스러우실 때도 있다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하셨더라고요. 그런 부담감, 아까 보상이라는 얘기도 하셨던 것 같은데요. 경책이 됐다고도 제가 들었습니다.

[덕조스님] 
그렇죠 아무래도. 법정스님 그러면 불자든 또 일반인이든 모르시는 분들이 없고요, 그리고 제가 스님의 또 제자이기 때문에 부담감이자 책임감이자 의무감이 저한테는 굉장히 주어진 것 같아요. 제가 비록 은사스님처럼은 되지못할지언정 은사스님께 누는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하고 살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스님의 그림자를 비춰서 저한테 이제 비춰본다면 제가 스님만큼은 못하지만은 아 저도 스님 만큼은 살아야겠다. 이제 그런 각오를 하게 되고요. 또 불일암을 제가 살면서 느낀 것은 불일암의 도량이 은사스님이 안 계시니까 그게 스님의 모습이다. 도량을 함부로 어질러놓던지 정리 정돈을 청결하지 않으면 은사스님께 누가 되겠구나. 마당 쓰는 게 어찌 보면 저 마음을 쓰는 것이고, 어찌 보면 도량을 청정하게 하기 위해서 풀을 뽑는 것이 저의 마음의 번뇌를 뽑는 게 아닌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배재수 앵커] 
맑고 향기롭게 이사장으로서 소임을 맡으셨는데요, 앞으로 어떤 계획하고 목표를 갖고 계십니까? 

[덕조스님] 
스님께서부터 마지막 유언으로 당신의 이름으로 된 것은 다 ‘맑고향기롭게’ 주겠다 이렇게 말씀하셨거든요. 결국은 스님의 사상이나 스님의 모든 것은 맑고향기롭게에 귀속되었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맑고향기롭게 정신인, 마음을 맑고향기롭게, 세상을 맑고향기롭게, 자연을 맑고향기롭게 인데, 이 사상 어떻게 펼칠 것인가. 그렇다면 저가 당장에 할 수 있는 것은 스님의 그 절판된 책들은 지금 아직까지 복간은 못하지만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 스님의 주옥같은 그런 미발표 글들은 소식지를 통해서 세상에 쓰임에 법문을 살아계신 것처럼 세상에 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또 맑고향기롭게를 생각하면 법정스님, 이렇게 연상될 수 있는 그런 활동들 그리고 길상사 오면 법정스님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일들을, 맑고향기롭게 사단법인체 소임자로서 앞으로 해야겠다. 그런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배재수 앵커] 
이번에 내신 책도 수익금을 좀 남다르게 쓰신다고 들었습니다?

[덕조스님] 
아, 이것은 스님이 쓰신 유고집이기 때문에 이것도 사단법인 맑고향기롭게에 들어가게 해서 거기에 대한 시민활동으로서 우리가 맑고향기롭게에 그야 말로 세상을 맑고향기롭게가 어려운 이웃들한테 도움을 주는 일이거든요. 우리가 이번에 대학교 장학생 선발을 했는데 어려운 학생들이, 불자인 대학생들이 굉장히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가정 형편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3~4개를 하고 공부를 하더라고요. 

[배재수 앵커] 
요즘 청년들 어렵죠.
 
[덕조스님] 
정말 어떻게 이런 환경,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공부를 이렇게 잘할까. 저는 감탄을 했어요. 그런 장학금을 좀 더 많이 주고, 많이 인재를 키워야겠다. 그것이 우리 맑고향기롭게 사단 법인체가 할 일이 아닌가. 그게 세상을 맑고향기롭게의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현재 스님께서 왜 맑고향기롭게를 만들었는지 되새기면서, 스님의 정신을 받들어서 실천하는 역할을 제가 해야겠다는 그런 각오입니다.

[배재수 앵커] 
시간이 좀 있어서요. 개인적인 질문 하나 드릴께요. 티베트 사진전도 여실만큼 수행 사진 찍기에 남다른 열정이 있으셨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요즘도 사진 찍기 좀 하십니까?

[덕조스님] 
아뇨, 안 합니다. 제가 사는 곳이 불일암이고, 불일암 아름다운 곳이잖아요. 또 카메라도 스님께서 주셔가지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모든 건 한 때라 그러잖아요. 모든 건 한 때인데. 그걸 지나면 더 시들해지고, 또 어느 정도면 또 다시 하게 되는 것인데, 지금은 일부러 카메라를 잡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아 정말 멋있다. 찍고 싶다 담고 싶다 그 마음이 일어날 때 한 컷 사진 찍게 되지. 찍기 위해서 카메라를 들지는 않습니다. 

[배재수 앵커] 
궁금했습니다. 시간이 거의 다 돼 가서요. 마지막 질문 드려야 되겠는데요, 요즘 사회적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서 방송 듣고 계신 청취자분들에게 당부하시거나 또 덕담해 주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해 주시죠.

[덕조스님] 
아, 코로나, 코로나, 지금 다들 코로나 때문에 힘들어하시는데요. 모든 상황을, 상황이라는 것은 또 나한테만 벌어지는 게 아니라 똑같이 벌어지는 일들이니까. 어떤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그것은 내 마음이 편안해지고 불편해질 겁니다. 독화살의 비유가 있듯이 독화살을 맞았을 때 그것을 빨리 빼는 것이 지혜로운 자고, 화살을 빼지 않고 누가 쐈지? 독이 얼마나 심한 독이지? 이런 생각을 한다면 독화살에 아마 죽게 될 거예요. 그런데 우리 수많은 사람은 뽑기 전에 그걸 고민하고 힘들어한다는 거죠. 그런데 우리가 주어진 상황이 만약에 독화살이라면 이 상황을 빨리 받아들이고 빨리 어떻게 지혜롭게 대처할 것인가. 그것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닌가 싶고요. 그것은 달리 얘기한다면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그에 따라서 상황은 달라진다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불자님들은 그야말로 마음을 넓게 포용해서 ‘대해’같은 마음을 쓰신다면 큰 바다는 모든 것을 다 수용하잖아요. 그러니까 그 조그마한 보물도 큰 바다보면 사라지듯이 용화되듯이 마음을 넓고 크게 쓴다면 ‘불법 대해’라고 하듯이 우리 불법 대해에 큰 마음을 쓰신다면 이 또한 그냥 작은 소리 없는 바람 소리에 지나지 않을까 싶어요. 

[배재수 앵커] 
오늘 코로나 상황으로 좀 어려운 상황인데, 또 어려운 걸음 해주시고 귀한 시간 내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덕조스님] 
감사합니다 

[배재수 앵커] 
조심히 들어가시고요, 성불하십시오

[덕조스님] 
좋은 하루 되십시오

[배재수 앵커] 
지금까지 순천 송광사 산내암자 불일암 암주이시죠 그리고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 이사장 덕조스님과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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