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배 사무처장 “부마민주항쟁의 정신은 민주시민교육을 가능케한 토대”

■ 출연 : 정영배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사무처장

■프로그램 : BBS 부산경남 ‘라디오 830’(부산 FM89.9, 창원 FM89.5, 진주 FM88.1)

■ 방송일시 : 2020년10월16일. 금요일. 오전8시30분. 

■ 진행 : 김상진 기자

앵커) 오늘 부마민주항쟁 41주년 기념식이 열립니다. 먼저 행사 일정부터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답) 네, 오늘 기념식은 오전 11시 부산대학교 넉넉한터에서 열립니다. 행사는 국민의례를 시작으로 부산의 대표해서 자갈치 아지매와 마산을 대표해서 아구할매가 나와서 기층민중들 입장에서 본 경과보고를 진행합니다. 이어 부산대학과 부산지역에서 많이 불렀던 시월에서서라는 노래를 불러 시월의 의미를 되새깁니다. 이어 부마항쟁당시 사망하신 고 유치준씨의 아드님이 나오셔서 41년전 아버지께 부치는 편지 낭독, 총리님의 기념사, 올해 주제가 부마민주항쟁이후 시민사회의 확장이 주제인데요. 그와 관련해서 시민단체와 일반시민들의 인터뷰영상, 그리고 그동안 민주화운동을 진행해 오신 분들에 대한 위로로 부산 출신 육중완 밴드와 마산출신 밴드 노브레인의 합동 공연이 마지막으로 펼쳐집니다.

앵커) 코로나19로 행사준비에 차질은 없습니까?

답) 네, 코로나19로 행사준비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일단 참석 인원을 제한해야 하는 문제가 제일 큰 문제입니다. 올해는 약 100명만 참석하는 행사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 특히 관련자분들께서는 꼭 참석하시고 싶으신데, 아쉬움이 많습니다. 그리고 며칠전 부산의 한 요양원에서 대규모 확진이 나오는 등 안전 문제로 조마조마한 상태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발 아무 문제 없이 끝나는게 목표입니다.

앵커) 지난해에는 관련 행사들도 많이 열렸는데요, 올해는 어떻습니까?

답) 많은 행사를 올해도 준비했습니다. 특히 학생들에게 부마민주항쟁을 알리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또 부마길 탐방프로그램 등을 마련하여 진행하려고 했는데, 역시나 코로나19로 인해 모두 온라인으로 전환했습니다.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와 함께하는 리멤버부마라는 행사가 있는데 이것도 엄청 축소해 진행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행사는 10월 22일부터 대영시네마에서 진행합니다. 그리고 학술대회도 진행하는데 최대 50여명만 참석하는 행사로 진행합니다. 이 행사는 10월 29일에서 30일 부산대학과 창원시청강당에서 진행합니다. 마산에서는 부마음악제, 부마영화제 등을 축소하여 오늘과 내일, 일요일까지 진행하구요. 표지석도 제작하여 오동동문화광장에 토요일 제막할 예정입니다. 그 외에도 부마민주항쟁을 학생들에게 알리기 위해 키트를 제작하여 스스로 공부할 수있도록 하여 진행하고 있습니다. 부마주간 부마민주항쟁계기수업도 교육청의 협조를 받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앵커) 청취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부마민주항쟁이 무엇인지, 어떻게 일어나게 됐는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답) 부마민주항쟁은 박정희 유신독재에 항거에 일어난 우리나라 최초의 자발적 시민항쟁입니다. 경제적으로 부가가치세 도입, 경공업위주의 경제정책이 중공업 위주로 바뀌면서 섬유, 신발산업 노동자의 불안감, 거기에 겹쳐진 것이 서울 YH 노동자들의 신민당사 농성, 그리고 그 노동자 중 1명인 김경숙씨의 사망, 당시 신민당 총재인 김영삼씨에 대한 국회의원 제명 등 복잡한 국내정치, 경제적 문제들과 오랜 독재정치의 폐해가 부산과 마산에서 터져 나온 것이지요. 유신독재에 항거한 여러 시위들은 있어왔지만 부산에서 특히 부산대학에서 먼저 터져나올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서 학생들이 시내로 진출하자 많은 시민들이 호응하여 처음에는 적은 인원이었지만 몇만명의 시민들이 참가하여 대규모 시민항쟁으로 발전하게 되고 여기에 위기감을 느낀 박정희 정권에서는 부랴부랴 부산에 계엄령을 선포합니다만, 항쟁은 마산으로 번져나갑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군을 동원하고 공수부대를 동원해 시위를 진압하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정국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궁정동 안가에서 대책회의를 하던 중 경호실장의 몇 만명 살해 발언 등 너무 안이한 대처에 실망한 안기부장이 대통령을 저젹하는 것으로 부마민주항쟁의 성과는 나타났다고 봅니다.  이후 서울의 봄, 광주항쟁으로 이어집니다. 끝내 군부독재를 끝장내는 6월 항쟁으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앵커) 부마민주항쟁이 우리 현대사에서 갖는 의미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답) 위에서 잠시 언급했습니다만, 부마민주항쟁은 우리나라 최초의 시민항쟁입니다. 박정희 유신독재정권의 장기 집권과 영구 집권까지 가능하게 만든 유신헌법, 경제적 어려움, 정치적 문제로 터져나오기는 했지만 실제적으로 장기적인 군부독재를 끝내는 시발이었지요. 부마민주항쟁 이후 서울의 봄,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으로 이어지는 민주화운동의 큰 줄기를 이루는 시발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민항쟁으로 시민들의 의식의 확장이 실제적으로 이뤄져 현재 다양한 시민운동의 출발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그렇다면 부마민주항쟁의 정신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정리할 수 있겠습니까?

답) 부마민주항쟁의 정신은 민주시민 즉 민주시민교육을 가능케 한 토대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부마민주항쟁 희생자들에 대한 피해보상문제는 지금 어떻게 돼 가고 있습니까?

답) 피해보상은 현재 부마진상규명위원회에 신청하신 분들에 대해서는 대부분 이뤄 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피해보상이라는 것이 부마진상규명법에 의해 30일 이상 구금자에 대해서만 보상이 이뤄집니다. 부마민주항쟁의 특성상 10월 16일 전후부터 구금되거나 한 분들이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 이후 다 풀려납니다. 결국 10일 이상되신 분들이 거의 없다는 이야기 이지요. 그래서 약 1500여명이 구금되었다고 하는데 보상을 받는 분은 얼마 안됩니다. 사실 몇 분 안됩니다. 이런 실정이라서 이 피해보상문제는 다른 부분에서 접근이 필요합니다. 5.18특별법처럼 1일만 구금되어도 보상한다든지, 5.18유공자처럼 부마유공자법을 만든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이분들에 대한 예우와 피해보상이 다시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쉬운 대로 부산과 경남에서 조례를 만들어 진짜 적은 돈이나마 지원하고, 예우를 하겠다고 해서 저희 입장에서는 굉장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에 대해서도 다시 이야기 되어야 할 부분도 많이 있지만요.

앵커) 최근에는 부마항쟁에 참가했던 3명이 41년만에 무죄를 선고 받았습니다. 어떤 내용이고, 이번 판결이 앞으로 진행될 보상문제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십니까?

답) 현재까지 7건이 무죄로 판결이 났구요. 얼마전 3분이 또 무죄판결을 받은 것이 보도가 되었습니다. 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나자 정부에서는 부산지역에 계엄령을 내립니다. 이 계엄령이 위헌이라는 대법원의 판결이 18년에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당시 실형을 받으신 분들이 재심 신청을 했고, 이번에 무죄 판결을 받으신 것이지요. 부마민주항쟁은 시민들의 자발적 항쟁으로 불법행위가 아니었다는 상징적인 판결입니다. 국가가 국민들에게 불법적으로 체포, 구금, 형집행을 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이에 대해서 작년 대통령께서 사과를 하신 것이구요. 부마민주항쟁과정에서 실형을 받은 이분들 말고도 각종 고초, 고문을 받은 분들도 재판이 진행중입니다. 그래서 30일 미만자라도 보상이 결정된 경우도 있습니다. 작년에 돌아가신 고호석 전 상임이사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어쨌든 이런 판결들이 긍정적으로 작용을 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앵커)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이 설립된지 2년이 됐는데요, 그동안 성과라고 할까요? 어떤 역할을 해왔습니까?

답) 제일 큰 것은 국가기념일 지정을 위한 활동이겠지요. 부산, 경남의 지자체와 여러 시민사회단체가 협력하여 국가기념일 지정을 이뤄냈지요. 그 다음으로 부산, 경남의 조례제정이겠지요. 어쨌든 조그만 돈이나마 지원받고 예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교육청과 함께 부마민주항쟁을 학생들에게 알리기 위해 계기교육자료집, 워크북 제작 등을 해서 보급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앵커) 우리 나라 현대사에서 민주화운동은 사회 변혁의 변곡점을 이루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지금 어느 단계에 와 있다고 보십니까? 

답) 현재 다양한 시민사회 운동들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어디까지 민주화운동으로 봐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여러 논쟁이 있을 수 있겠지만, 시민들의 권익의 확장은 민주화운동의 중요한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아직까지 권위주의 문화 뭐 꼰대 문화라고 할수도 있겠고, 가부장적 문화 등이 많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점차 우리 사회가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해 가는 단계 중 어디 쯤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면?

답) 진정한 민주주의라는 말이 너무 어렵군요. 그것이 있기는 한지도 모르겠구요. 그냥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라는 정도로 정리하고 싶습니다.

앵커) 끝으로 부마민주항쟁과 관련해 청취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답) 부산과 마산에서 시민들 위대한 항쟁인 부마민주항쟁을 기억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자랑스런 우리 역사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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