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에 초등학생 집단 성폭행이라는 경악을 금치 못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성폭력행위에 가담했던 학생들이 인터넷, 케이블TV 등 일상생활공간에서 쉽게 접촉할 수 있는 음란물의 행위를 모방하여 사건을 저질렀다고 진술했습니다. 이는 미성년자에게 유해한 콘텐츠를 관리하는 현재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단 이 사건만이 아니라 인터넷과 케이블TV를 통해 전달되는 영상물의 성적묘사나 폭력수위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습니다.  청소년범죄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는 유해 콘텐츠에 대한 규제 시스템을 왜 적극적으로 강구하지 않는지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사회는 위기감을 느끼는데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새 정부의 정부기구 개편과정에서 방송과 통신 콘텐츠의 심의를 담당하게 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설립이 몇 개월 동안 지연 된 끝에 이번 주에야 겨우 이루어질 모양입니다. 



국회의장의 해외출장 등을 이유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9인이 최종적으로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설립을 전제로 방송심의를 담당하던 방송위원회와 통신콘텐츠의 심의를 담당하던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해체된 상태이므로 사실상 심의 공백 기간이 오랫동안 지속되었습니다. 



그 동안 한 케이블TV 채널에서 [알몸초밥] 이라는 우려할만한 선정적인 프로그램을 방영하였고, 이 외에도 모방범죄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받은 상당수의 프로그램에 대한 심의가 방치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정치권의 사정으로 설립이 지연되는 것을 보면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과연 맡겨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우려됩니다. 정파의 이익을 위해 위원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아닌지, 혹은 방송과 통신의 콘텐츠 차이를 놓고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아닌지, 그로 인해 지금처럼 유해 영상물이 무방비 상태로 유통되는 상황이 계속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무엇보다 유해 콘텐츠를 체계적으로 규제하는 시스템을 서둘러 마련해야 합니다. 미국은 TV프로그램 등급제와 더불어 가정에서 부모가 관리할 수 있도록 TV수상기에 V-Chip의 내장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이미 1996년에 도입한 바 있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최우선 과제는 유해 콘텐츠에 대하여 방송사, 가정, 그리고 시민단체가 협력하여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관규(동국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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